윤석열 정권이 생각하는 홍범도의 '죄목' 살펴보니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의 히,스토리] 홍범도와 자유시 참변 ▲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무장 독립투사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 경내에서 치우겠다고 나선 윤석열 정권의 공세가 홍범도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의 격한 반발로 인해 5인 전체를 폄하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소련과 연계된 홍범도의 '결격 사유'를 부각시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28일 국방부가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윤 정권이 생각하는 홍범도의 '죄목'은 이렇다.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음." 국방부는 '자유시 참변'을 소련공산당과 연관 지어 설명했지만, 이는 부정확하다. 1921년 6월 28일 자유를 의미하는 스보보드니에서 발생한 자유시 참변 당시, 현지에서 공권력을 행사한 주체는 소비에트공산당이 아니었다. 1920년 4월 6일 수립된 극동공화국(원동공화국·치타공화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극동공화국은 소련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지만, 소비에트의 일원은 아니었다. 법적으로 별개였다. 소비에트에 합병된 것은 1922년 11월이다. 2005년 <대동문화연구> 제52집에 수록된 홍웅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의 논문 '극동공화국 건설에 나타난 소련의 동아시아정책의 한 단면'은 "소비에트공화국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일정한 독자성을 지닌 독특한 공화국"이었다고 평한다. 그래서 자유시 참변에 동원된 부대는 극동공화국 군대이지 소련 군대가 아니었다